[Boyhood, 보이후드] 그 때 그 예민한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After Midnight

어쩔 수 없이 별 특별한 것 없는 내 이야기부터 하고 싶어진다. 

내가 소녀시절을 보낸 동네는 논과 밭을 확 갈아 엎어 뺵빽한 아파트숲으로 바꿔버린 곳이다. 잠만 자고 일하러, 공부하러 서울로 아침마다 버스에 전철에 몸을 싣는 사람들을 위한 신도시. 8살 때 이 동네로 이사와 전학한 학교로 첫 등교하던 날의 긴장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달 전부터 악몽을 꿀 정도로 너무너무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난 '특별한 전학생'이 될거야' 판타지 기대에 흥분했던 듯(그렇다, 난 또래보다 5살 이상은 성숙했던 꼬마). 하지만 이 모든 긴장과 기대를 박살내듯, 내가 전학간 날은 나 외에도 우리반에 무려 7명의 다른 전학생을 맞이하는 날이었고, '이 애는 서울시 도봉구~ 어드메에서 이사온 혜림이란다, 저 옆자리에 있는 xx가 혜림이 학교 구경좀 시켜줘" 따위는 없었다. 칠판 귀퉁이 <오늘 전학온 학생> 명단에 내 이름 한줄 추가되고 끝. 30대 중후반이었던 그당시 우리 부모님처럼 신도시 분양으로 경기도 북부에 새살림을 차린 8살 아이를 둔 커플이 무려 그날에 우리 단지에만 7명이 있었던 게지.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났다. 신도시 분양 당첨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고서 덩실덩실 딸래미와 두손을 부여잡고 거실을 빙빙 둘며 춤추던 35세의 임산부였던 우리 엄마는, 이제 더이상 가계부를 쓰지도 않고, 내 집 한칸 마련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신문 부동산면을 매일 같이 들여다보며 스크랩북을 만들지도 않는다. 

인형 같던 내 동생이 태어나 집에 처음 왔던 날, 친구들을 불러 첫 생일파티를 하던 날, 처음으로 교복을 입던 날, 수줍은 첫 데이트를 했던 날, 친구들과 빈 우리 집에서 밤새우며 놀았던 밤, 짝사랑과 실연으로 밤을 새워 울며 별밤을 듣던 날, 그 모든 날들이 조각조각 생생하기만 한데 어느새 세월이 켜켜이 쌓여 20년이 지났다. 처음 이 신도시에 왔을 때 공원의 나무들이 다 너무 아기나무라며, 95년에 태어난 네 동생이랑 같이 쑥쑥 자라겠네, 했던 아빠의 말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소녀시절을 마무리한 20살 내 동생이 그런 것처럼 요즘 동네 공원의 나무는 푸르르고 무성하다 못해 위엄있기까지 하다.

영화라는 것은, 그 매체의 특별함을 영리하게 이용해 실제 삶에선 겪지 못할 경이를 선물하곤 했다. <그래비티>를 보며 아마도 평생 하지 못할 우주 유영을 할 수 있었고, <인셉션>을 통해 꿈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돌아오는 놀라운 layer를 체험할 수 있었지. 그 외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지럽히고 안정시키고 해답을 주었던 수많은 영화들을 일일히 열거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이후드>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지나왔지만, 소환할 수 없는 그 순간순간들, 삶을 살아가며 겪어온 '나만의' 조각들을 보이지 않는 접착제로 이어 '나의 생'이라는 신비를 3시간 동안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극장에 앉은 그 모두의 인생도 메이슨의 그것처럼 영화일 수 있다는 거대한 의미의 황홀경. 그 어떤 매체도 할 수 없는, 오로지 '영화'라서 할 수 있는 체험.

전학가기 전날 밤새도록 무서운 생각을 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특별한 전학생이 되고야 말겠다던 1994년 10월의 어느날 8살 그 소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덧글

  • 2014/10/29 14: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0/29 23: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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