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는 없도록, After Midnight

무려 2달 간 영화관에 가지 않은 건 5년만에 처음인 것 같다. 맙소사. 뭐 다사다난했고 다른 문화생활(예를 들면 뮤지컬과 여행)을 즐겼기에 똔똔이지만서도. 여하튼 이 오랜만에 방문한 극장에서 마주한 이 영화는 또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정확한 메시지를 주지 뭐야, 역시 영화랑 난 천생연분(...)이라기 보다 나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짝사랑.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그 실패가 크든 작든 당사자에겐 엄청난 것이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성공해보지 못한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그 저멀리 우주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싶은 두려움. 또 다시 상처입고 웅크린 채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벽을 수만번 쯤 차야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실패'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흑.

뭐 내 경험 상 그나마 제일 좋은 방법은 '실패 시뮬레이션' 무한 가동이다. 김칫국 마시고 잘됐을 때 얼마나 좋을까! 이러이러하겠지! 이런 상상 절대 말고, 실패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여러가지 각도로 짜서 머리 속에 계속 재생하는 거지. 웅크린 나의 모습, 남몰래 울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렇지 않게 표정 짓기, 실패 극복 음식은 뭘 먹으면 좋을까 등등. 이게 그나마 그-나마 조금 효과는 있더라구. 

우리의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역)은 안타깝게도 이런 실패 시뮬레이션을 돌릴 시간이 단 이틀. 그 이틀을 방구석에 누워서 세월아 네월아 돌리며 실패에 대비하느냐, 아니면 미세하게나마 보이는 희망을 찾아 몸을 바삐 움직여 최선을 다해볼 것이냐의 기로에서 우리의 산드라, 비록 아주 징징징지이징징지이지잊ㅈㅇ징 대며 하긴 하지만 훌륭하게도 후자를 택하였도다. 본인의 실직을 구제해줄지도 모를 이들을 굴욕을 참고 한명한명 찾아가서 설득한다는 것. 남편놈(하, 이렇게 썼지만 사실 정말 좋은 남자인듯)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츄라이해보라고 응원을 하는데, 중간에 산드라도 쏘아붙였지만 뭐 그녀에게 빙의해서 대신 얘기해보자면 "야 가서 굴욕당하는 건 네가 아니자냐 쉽게 그렇게 화이팅만 쳐할 수 있냐".

결국 그녀의 고생어린 츄라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스포일러(...)이지만, 중요한 건 그거다. 어쩄든간 후회없이 츄라이를 다 해보고나면, 미련없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실패를 하게 되도 "그래 괜찮아 할만치 했어" 성공을 하게 되면 "역시 고생이 이렇게 기쁨을 가져오는구나" 보람보람열매를 잔뜩 먹게 되지요. 내가 어제부터 어울리지 않게 EBS 스러운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다 이렇게 된 까닭엔 내 개인적인 상황이 투영되어 있지 않겠으요? 노친네들 말씀 하나도 틀린게 없더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내 마음은 커지는거야. 캬, 나 청소년 드라마 하나 써도 되여??? 그런 의미에서 나도 멍청하게 실패 시뮬레이션 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이나 다하자. 우히히.


그런데 한가지 개인적인 의견, 1,000유로(한화 130만원 정도)가 물론 적은 돈은 아지만 그게 정말 함께 일한 동료를 실직의 현장으로 내모는 정도의 보너스로 '설정'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며 ㅜㅜ 흐잉 이놈의 각박한 세상 불란서도 마찬가지구나...

덧글

  • 2015/01/14 13: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9 14: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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