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들에 대한 생각: 킹스맨, 폭스캐처, 와일드, 이미테이션게임 그리고 보이후드 After Midnight

*****스포가 될 내용이 있을 수도 있사와요*****


1. 킹스맨(Kingsman: The Secret Service). 2월 14일(토)

혹자는 말했지, 이 영화는 콜린 퍼스를 주인공으로 한 '수트 포르노'라고. 이 아저씨 우리엄마랑 동갑인데 정말 왜이래 ㅠㅠㅠㅠ 멋지긴 하다. 이 영화는 '병신 같은데 멋있어' 한마디로 축약 가능. 타란티노가 주로 하는 B급 감성에 B급으로 만든 척 하는 A급 영화의 계보를 잇는 느낌이랄까? 감독이 본인 취향 적극 반영해 죄다 하고싶은거 투영해 버린 영화. 재밌다, 심플하고, 통쾌하다. 

미묘하고, 재단하고, 티안나고, 암시하는 영화들 속에서 화끈하고 통쾌하지만 세련되게 잘 빠진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 퍽 신선했다.

2. 폭스캐처(Foxcatcher). 2월 17일(화)

세 배우의 연기대결이 아주 일품이다. 뭐 여기저기서 찬사를 받으며 노미네이트 되었던 스티브 카렐의 코주부 연기도 장난이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초반에 채닝 테이텀과 레슬링 연습을 하는 장면의 그 자연스러움과 탁월함이란. 뭐 물론 레슬링 선수처럼 보이기 위해 훈련도 연기연습도 많이 했겠지만서도, 동생놈한테 콧방맹이 쥐어 막고 코피 퐝! 터지는데 감정 숨기고 쓰윽 코피 한번 소매로 닦은 뒤 바로 다시 연습에 몰입하는 그 부드러운 연결! 헐크아저씨가 비긴어게인에선 노래를 만드는게 그리도 자연스럽더니 여기선 레슬링을 하시네요. 엄지 척!

옅은 회색빛이 가득히 드리우는 영화 상영 내내 계속 왠지 '별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 속에 관객을 가두고 세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멋진 연출력 탓이리라. 잔잔하지만 서늘하다. 능력이 거세된 욕망이란 얼마나 참혹하단 말인가 ㅠㅠㅠㅠ

3, 와일드(Wild). 2월 18일(수)

나도 대체 왜 내가 그때 하이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북한산은 커녕 정발산도 헥헥 대며 올라가는 저질 체력의 내가, 왠지 10시간 걸리는 요세미티 산의 하이킹을 낯선 사람들과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뭘까. 결국 도중에 길을 잃어 발톱도 함께 잃고(...) 향후 5년간 절대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10시간 동안 한국인 한명 없는 하이킹 크루들 속에서 묵묵히 트래킹을 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고 짧은 시간에도 정말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그려보고, 지웠는데, 쉐릴은 그 몇백배 만큼을 해치울 수 있었겠지. 물론 극중 쉐릴의 '극한 하이킹'에 비할 것은 당연히 못되고, 내가 그녀처럼 험한 인생의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해본적도 없고 관심도 없던 어떤 일이 갑자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이란,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도, 야기한 것도 아닌데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극중 쉐릴이 태어날 때부터 폭력적인 아버지를 고른 것도 아니고, 가난을 자초한 것도 아니고, 엄마의 병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 때문에 본인이 자행했던 나쁜 일들도,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다르다. 행복은 쉐릴이 마음먹기에 따라, 창조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녀에게 우연히 그 책이 보였고, 이로가도 저로가도 이판사판인 판에 마지막 행복에 대한 희망으로 산을 선택하게 된 것이지. 어차피 내 앞에 펼쳐진게 불행 뿐이라고 여겨진다면 뭐든 어떤거든 시도해 보는 것이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게 바로 그녀에겐 3개월 간의 험하고 긴 여정.

인생의 커다란 문제들이 버겁게만 느껴지고, 뭐 그 문제들 해결하고 나이들어봤자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라지만, 어차피 그렇게 되도 혼란스럽고 지금도 혼란스러운 거라면 계속 이 상황에 안주하기보다 뭐라도 해보고 싶은 거다. 그 새로운 시도가 별로일 수도 있지만 뭐 지금도 별로니까, 아니다 싶으면 그때가서 다시 또 생각하는 거지뭐. 시도를 위해 고민해보는 자체가 나에게는 자극적이고 새롭고 설레는 거다. 그게 나에게 사실은 작은 행복을 주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4.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2월 23일(월)

이렇게 영화적인 실존인물이 몇이나 될까. 명실공히 천재에, 동성애자들을 불법으로 처벌하던 시절의 게이에, 어린시절 가장 사랑했던 친구는 죽었고, 세계대전 때 비밀요원으로 활약하다가, '컴퓨터'의 전신이 되는 기계를 발명하고, 자살하다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영화화 해보고싶어 침이 쥘쥘 나오는 인물.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앨런 튜링의 묘사에 있어서 계속해서 존경심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든 그를 영화적으로나마 제대로 추모하고 싶은 감독의 절절함이 지속적으로 드러난달까. 구구절절한 엔딩크레딧에서도 알 수 있지. 그렇지만 흥미롭고 잘 만든 영화다.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플래시백이 계속 교차적으로 나오지만, 뭐 세련되게 왔다갔다 하는 편. 그리고 그 무엇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심금을 울려 모든 단점을 좀 흐릿하게 보이게 하지 ㅠㅠㅠㅠ 이래서 다들 컴버배치 컴버배치 하는구먼(셜록 안본 주제에 이러고 있...)

그리고 마지막, 2월 20일(금)에 보이후드 한번 더 봤다.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뭐 보이후드에 대해서는 여러번 생각하고 글도 남겼으니 가타부타 말겠지만. 야 아카데미 시상식 너무한거 아니냐 보이후드에 여우조연상만 주다니 ㅠㅠㅠㅠ 내가 즐겨보는 가디언 무비의 기자들도 이건 좀 실망스럽다며, 보이후드가 modern classic이래. 버드맨을 안봤기 땜시롱, 더 세게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감독상이나 작품상 하나 쯤은 더 줘야지 잉잉. 다시 봐도 최고인 영화, 다시 봐도 멋진 엄마. 언니 수상소감도 멋지고 다 멋져요 입에 침이 말라도 부족!



덧글

  • 아놔 2015/02/26 07:17 # 삭제 답글

    스포있으면 제목에 스포라고 표시좀 합시다.. 이게 뭔 날벼락인지
  • 체리달링 2015/02/26 09:24 #

    어멋 죄송해요 ㅠㅠㅠㅠ실화들이라 그런 생각을 못했네요 ㅠㅠㅠ표시했습니당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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