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내 기준에서 지상 최고의 도시다. 물론, 지하철은 똥통이고,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만큼 친절하지 않고, 물가도 비싼 데다가 팁도 많이 주는 분위기지만. 도시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뉴욕만한 곳은 없다. 전세계 모든 종류의 음식을 best-quality로 맛볼 수 있고, 쇼핑천국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 야밤엔 루프탑에 올라가면 보석같이 화려한 야경, 걷다걷다 쉬고 싶을 땐 도처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공원들과 사람들의 여유까지. 줄줄이 나열할 것도 없이 뉴욕은 최고다. 땅땅땅.



6년만에 다시 찾은 뉴욕에서 여유로운 웨스트 빌리지 산책, 미트패킹 쇼핑, MoMA에서 샤갈 그림 다시 보기, 6년전엔 없었던 하이라인 파크 방문 등이 버킷 리스트에 있었지만 가장 가슴 설레였던 메인 이벤트는 나의 히어로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이 대략 15년만에 다시 공연하는 헤드윅을 브로드웨이에서 본다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다시는 없을 유니콘 스러운 일로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마구마구 떠들고 싶지만 이건 약간 아는 사람들만 아는 대단한 것이라 폴매카트니의 경우처럼 universal하게 뱓아들일 수는 없을 대단함이라 ㅠㅠㅠㅠ 엉엉 하지만 진짜 핵대단한 일임.
고3때 헤드윅을 영화로 처음 접하고는 진심으로 머리가 떙,하고 맞은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을 훅, 친 것 같은 강렬한 심장의 요동을 느낄 수 있었다. 헤드윅이 말하는 사랑과, 음악과, 존재의 가치가 너무도 획기적으로 느껴져서 예민한 소녀 잠을 또 못이루고 흑. 2006년에 헤드윅 콘서트라고 해서, 존이 방한해 한국 공연의 캐스트들과 함께 헤드윅 OST를 부른 콘서트가 있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내 인생 최고 미친 콘서트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그것이다. 하지만 전설의 레전드가 되어야 했던 그 콘서트는 그 다음해에 다시 열려..ㅋㅋㅋ 또 다시 한번 내 한몸 불사르고 오기도 했는데, 그 해에는 일종의 존카메론미첼 투어를 감행, 숏버스 상영회, 존 카메론 미첼 초기작 상영회 등을 순례하며 그와 포옹도 해보는 기적의 빠순이 순간도 있었지. 아 이게 다 언제적 일이냐 ㅠㅠㅠㅠ
여하튼 그래서 2006년-2007년에 걸쳐 존 카메론 미첼을 직접 영접한 경험이 있기에 그에 대한 나의 팬심은 이정도면 채웠다 생각했지만 가슴 한구석 한가지 남아있던 아쉬움은, 그가 연기하는 헤드윅은 영원히 볼 수 없겠지, 였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헤드윅은 오로지 존 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그 수많은 한국 공연도 모두 패스하고...영화만 지지리 돌려 봤던 나의 뚝심. 하지만 기적적으로 나의 이런 뚝심이 빛을 보는 날이 있었느니 그게 바로 지난 달의 뉴욕 미라클.
LA을 거쳐 뉴욕 여행을 하기로 급 결정하고, 오페라의 유령이나 봐볼까 위키드나 봐볼까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이트를 유유자적 서핑하다가 아주 그냥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그것은 바로바로 존 카메론 미첼이 지금 바로 롸잇 나우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에, 거의 마지막이 될 헤드윅 공연을 직접 십여년 만에 하고 있다는 것. 오마이갓 오마이갓. 이것이 바로 나보고 퇴사를 하고 미국 여행을 가라는 계시였나 싶을 정도로 대박대박. 뉴욕 숙소도 구하기 전에 먼저 공연 티켓부터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예매를 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짐도 안풀고 공연장으로 가고싶었지만 혹시나 국내선이 연착되서 늦으면 어쩌나 싶어 살짝 진정하고 바로 그 다음날(4월 16일 목요일)로 예매. 역시 전설의 레전드 헤드윅을 보기 위한 미쿡사람들의 발길도 대단한지, 좌석은 거진다 매진이었지만 나홀로 여행의 장점이 이것 아니겠니? 한 자리는 역시나 있더라구 후후.
그리하여, 나는 헤드윅의 창시자, 크리에이터, 헤드윅 그 자체인 존이 연기하는 브로드웨이에서의 Hedwig and the Angry Inch를 보고 왔다는 말씀. 아 이건 정말 자손들에게 길이길이 남길 대단한 일인데 내 자손들이 이 대단함을 알아줄까 몰라...
역시 본인의 분신이자 자식같은 작품이라 그런지 존이 연기하는 헤드윅은 연기같지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심지어 토미도 등장하지 않고, 이츠학도 별 대사가 없어. 오로지 헤드윅의 원맨쇼!!!그래서 좋음!!!! 전체적인 줄기는 원래 플롯을 따라가지만 내 보기엔 존이 그냥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애드립이 반 이상인 듯. 관객과도 deep한 호흡이 이루어지고, 흐억 더 앞줄에서 봤어야 했는데 ㅠㅠㅠㅠ 폴매카트니가 부르는 Hey Jude를 뗴창한 것 만큼이나, 존이 부르는 wig in a box와 midnight radio에 떼창을 하는 경험은 내 평생 또 있을 줄 알았나...눈물이 주룩주룩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매니아층이 짙은 작품이다보니, 미쿡의 헤덕들이 집합해 들썩들썩 존의 한마디한마디에 환호하고 꺄르르 터지며 보는 재미가 남달랐음. 10년 가까이 헤드윅을 지속적으로 사랑해온 보람이 굉장했던 하루였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바이바이할 때 관객 모두 15년만에 노쇠한 몸(...)으로 열정을 불태워 헤드윅을 연기해 준 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게 느껴졌달까.
6년만에 다시 뉴욕 브로드웨이를 찾을 수 있었단 사실 자체도 감격이었지만, 존의 헤드윅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감동 그 자체였다. 나의 짧은 표현력이 이 벅찬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아쉽군 ㅠㅠㅠㅠ 앞으로 뉴욕에 계속해서 방문하겠지만!!! 그러고 싶지만!!! 존의 헤드윅을 보는 건 이번 한번 뿐일거다. 앞으로 뮤지컬욕구는 정말 이걸로 다 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도 여전히 반짝반짝한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나의 행복한 순간만 알고 있는 도시. 6년 전에 헤어질 떄도 곧 또 오겠다고 했는데, 6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다음에 갈 땐 6년이나 걸리지 않도록 열심히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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